오랜만에 찾은 극장
이번 주말, 정말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 영화 두 편을 처음 봤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CODA,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 다이어리.
누구나 알 만한 거장 아티스트의 이야기이지만, 음악적 성취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작품이기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될 것 같다는 작은 기대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몇 년 전 읽었던 그의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영화는, 어쩌면 기대처럼, 음악보다 사람을 보여주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작업실에 어수선하게 놓인 잡동사니, 비 오는 날 우산 위로 마이크를 들고 다니는 뒷모습, 잠 못 드는 새벽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어깨선. 거장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사람의 보통의 시간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음악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궁금해하던 매달의 보름달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고, 그날그날의 생각도 적어두고 있었습니다. 거장이 자신의 업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죽음을 마주하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두 시간 전, 더 이상 다른 무엇을 적을 힘은 남지 않았을 그 시간에도 — 그는 자신의 체온과 맥박과 혈압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숫자 몇 줄을 보면서, 잠깐 숨이 막혔습니다.
기록이라는 것
기록은 보통 남기기 위해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나중에 돌아보려고, 정리해두려고. 그래서 기록은 종종 결과물에 가까운 무엇으로 여겨지지요.
그런데 그 마지막 두 시간의 숫자들은 그런 종류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돌아볼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고, 정리해서 정돈할 다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건 어쩌면, 살아있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숨을 쉬듯, 심장이 뛰듯 — 그가 평생 해왔던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기록의 힘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무엇을 남기느냐 이전에, 흘러가는 매일을 지금 이 순간으로 붙드는 일.
영화관을 나서며
조금씩 감정을 추스르며 걸어 나오는 길에, 문득 만들어둔 앱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기록의 힘을 믿고,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그 앱들 말이지요.
만든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작은 코치 앱들. 거기에도 작은 기록의 공간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길은 길고 막막하고, 그 위에서 마음이 자주 흔들릴 테니까 — 매일의 마음이 잠시 머물 자리 한 칸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들어둔, 그저 그런 작은 칸입니다.
거창한 기능은 아닙니다. 사실 별로 자랑할 만한 것도 못 됩니다.
다만,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혼자 싸우는 사람에게 옆자리 하나 만들어드리고 싶었거든요. 그 옆자리에 작은 노트 한 권쯤은 놓여 있어도 좋겠다, 그 정도 마음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처럼 큰 족적을 남기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누군가의 길고 막막한 하루에 그 작은 칸이 한 줄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 그것대로 의미는 충분할 겁니다.
마지막 메모
제 마지막 메모가 어떤 내용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가까운 어느 평범한 저녁에, 메모장에 이런 한 줄을 적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도 새로운 수십 명의 동지들을 만났다.”
조용히, 매일, 한 줄씩.
여러분이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한 줄은 어떤 문장인가요?